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카모토 료마 (문단 편집) === 신정부강령팔책(新政府綱領八策) === 신정부강령팔책은 대정봉환 이후, 1867년 11월 당시 은신처였던 오미야(近江屋)에서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신정부 수립을 위한 정치강령이다. 앞서 언급되는 선중팔책과 달리 실물이 존재하며, 국립국회도서관 소장본과 시모노세키 시립역사박물관 소장본이 남아 내려오고 있다. 각 웅번의 실력자들에게 보내기 위해 쓴 것으로 추정된다.[* 선중팔책과 연관된 일화에선 사전에 제기한 여덟 방책을 보다 현실에 맞도록 다듬은 결과물이라고 주장하지만, 선중팔책은 허구고 신정부강령팔책은 실물이 존재하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오히려 이 쪽이 선중팔책 일화의 뿌리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第一義 天下有名ノ人材を招致シ顧問ニ供フ''' >'''제1항 천하의 유명한 인재를 모셔와 고문으로 삼는다.''' > >'''第二義 有材ノ諸侯ヲ撰用シ朝廷ノ官爵ヲ賜イ現今有名無実ノ官ヲ除ク''' >'''제2항 유능한 제후를 등용하여 조정의 관직을 하사하고 현재 유명무실한 관직을 폐지한다.''' > >'''第三義 外国ノ交際ヲ議ス''' >'''제3항 외국과의 교류를 의논한다.''' > >'''第四義 律令ヲ撰シ新タニ無窮ノ大典ヲ定ム律令既ニ定レバ諸侯伯皆此ヲ奉ジテ部下ヲ率ユ''' >'''제4항 율령을 편찬하여 새롭게 영원한 대전을 정하고 율령을 정하였다면 제후 모두가 이를 받들며 부하를 통솔한다.''' > >'''第五義 上下議政所''' >'''제5항 상하의정소.''' > >'''第六義 海陸軍局''' >'''제6항 해육군국.''' > >'''第七義 親兵''' >'''제7항 친병.''' > >'''第八義 皇国今日ノ金銀物価ヲ外国ト平均ス''' >'''제8항 황국의 현재 금은의 물가를 외국과의 평균에 맞춘다.''' > >'''右預メ二三ノ明眼士ト議定シ諸侯会盟ノ日ヲ待ツテ云云''' >'''우측의 내용을 사전에 두어명의 안목 있는 자들과 의논하여 정하고 제후회맹의 날을 기다리고…''' >'''OOO''' 自ラ盟主ト為リ此ヲ以テ朝廷ニ奉リ始テ天下萬民ニ公布云云 >'''OOO''' 스스로 맹주로 나서서 이 안을 조정에 올려 천하 만민에게 공포하며… >'''強抗非礼公議ニ違フ者ハ断然征討ス権門貴族モ貸借スル事ナシ''' >'''강하게 저항하여 무례하게 공의를 어기는 자는 단연히 정토하며 권문귀족이라도 예외가 없다.''' > >'''慶応丁卯十一月 坂本直柔''' >'''게이오 정묘(1867년) 11월 사카모토 나오나리'''(사카모토 료마의 본명) 여기서 사카모토 료마가 생각하던 OOO는 [[도쿠가와 요시노부]]라는 가설이 지배적이다.[* 마츠다이라 슌가쿠, 산죠 사네토미 등도 거론되는데, 통설로서 여전히 요시노부가 유력시된다고 한다.] 정치력있는 리더, 요시노부를 중심으로 사츠마, 조슈, 토사 같은 웅번들이 받쳐주면서 새로운 국가를 이끌어 가길 바랐던 것이었다. 사카모토 료마는 희망을 가득 품은 채 신정부강령팔책을 작성하였으나 보름도 채 지나지 않아 정체불명의 괴한들의 칼에 맞아 절명하고 만다. 그리고 그가 꿈꾸던 새로운 세상은 불과 1달만에 그 환상이 깨져버린다. 료마의 의도대로 요시노부가 내대신 자격으로 신정부를 이끌어갈 계획이었다. 그러나 12월 신정부 출범일에 사쓰마가 어소를 무력으로 점거하며 요시노부 세력의 출입을 일체 금하였고, 그 사이에 날치기로 왕정복고의 대호령을 진행하였다. 곧 [[무진전쟁|2달만에 전쟁이 발발하면서]], [[서남전쟁|점점 순탄치 않은 방향으로]] [[일본 제국|흘러가기 시작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